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클랜드 전쟁 (문단 편집) == 배경 ==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이 실효지배하고 있으나, 불분명한 영유권 역사로 인해 아르헨티나가 1950년대부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 일대를 둘러싸고 1960, 70년대까지 여러 차례의 영유권 협상이 있었으나 영국 측의 거부와 지역 주민들의 아르헨티나 귀속반대 여론으로 인해 모두 결렬되었다. 1976년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쿠데타]]로 세워진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오일 쇼크]]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자본과 외채를 대규모로 도입했다.[* 사실 칠레 [[피노체트]] 정권이 시행한 것을 그대로 도입한 '''신자유주의의 원조격 정책이다.''' 차이점이라면 칠레는 무분별한 외채와 외자 도입에 이자율 상승이 겹치면서 경제가 파탄날 뻔했지만 구조조정에 성공하면서 일단 한숨 돌렸고 군부가 물러는 났어도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아르헨티나 군부는 구조조정에 실패한 와중에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키면서 철저하게 패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1980년 금리 인상으로 이자율이 급상승하고, 기업 채무를 국가에서 갚도록 하는 정책을 펴면서 재정난은 극심해졌다. 이에 빚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재정지출을 대폭 줄이는 정책을 도입하였으나, 외채는 더더욱 불어났고 사회 복지 정책의 실종으로 빈부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심각하게 악화된 경제 상황 때문에 국민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1978년 월드컵]]을 개최하고 해당 대회에서 온갖 무리수를 두어 자국 팀을 우승시킨 것 등이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걸로도 불만을 잠재울 수 없어 당시 [[레오폴도 갈티에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의 군부에서 내부적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돌려 단결을 꾀하자는 안이 대두되었고, 그 대상으로 아르헨티나와 역사적으로 라이벌/앙숙인 브라질, 칠레 등 주변 남미국가들이 거론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인근 포클랜드 제도의 [[영국군]]이 되었다. 물론 영국은 세계에서 꼽히는 [[강대국]]이지만, 아르헨티나는 여러 계산상 해 볼 만한 상대로 생각했다. * 포클랜드 제도는 아르헨티나 앞바다에 있었으므로 아르헨티나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남극]]에도 인접해 영국 본토는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러일전쟁]]이나 [[미국 독립전쟁]]도 그렇듯, 거리가 멀면 국력 차이가 상쇄된 사례가 많다. * 포클랜드 제도를 지키는 군대와 주민은 겨우 주민 1500명과 60만 마리의 양떼가 사는 곳에 영국 해병대 50명으로 소수여서 한꺼번에 기습하면 손쉽게 제압이 가능했다. 실제 전쟁에서도 기존 경비 병력은 쉽게 제압했다. * [[아르헨티나군]]도 전쟁 당시 나름대로 군 현대화를 거쳐 프랑스에서 수입한 [[쉬페르 에탕다르]]와 [[엑조세|엑조세 대함미사일]], [[롤랜드 대공 미사일]] 등, 미국산 [[CH-47 치누크]], [[MD500]], [[AAV-7A1]]를, 심지어는 '''영국'''에서 수출한 [[42형 구축함]], [[슈퍼 링스|링스 헬기]], [[L1A1 SLR]]등을 장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력에 대해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외에도 독일제 [[209급 잠수함]], 소련제 [[스트렐라]] 지대공 미사일등 전 세계에서 무기를 구입해, 마치 [[걸프전]] 때의 이라크군처럼 전 세계 무기의 박람회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당장 영국과 사용하는 장비가 일치하는 것이 엄청 많았다. * 영국이 강대국이라지만 1970년대쯤 되면 [[미국]]과 [[소련]]의 양강 구도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한물 간 나라로 여겨지고 있었다. [[제2차 중동전쟁]]에서는 대놓고 굴욕을 당해 더 이상 옛날의 [[대영제국]]이 아니라는 인증을 전세계에 했었다. * 영국 해군의 마지막 정규 [[항공모함]]인 [[오데이셔스급 항공모함|오데이셔스급]] [[아크로열]]이 퇴역하여 영국이 유사시 장거리 항공작전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반면 [[아르헨티나 해군]]은 '''영국제 항공모함'''인 [[콜로서스급 항공모함]] 베인티싱코 데 마요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공작전이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 무엇보다 영국이 몇 년 전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력이 나빠진 점 등이 있다. 여러 개전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추측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전 개시 전 포클랜드 제도는 본국으로 통하는 항공편도 없었고, 의료 서비스조차 본국이 아닌 아르헨티나에 의존해야 했다.[* 당시 영국은 무상 의료 서비스를 하고 있었지만,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이 펼친 임금 삭감 정책 덕택에 아르헨티나의 의료비용이 외국인들 기준으로는 획기적으로 낮아져 본국 운수비용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